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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버스 소재, 베타 토도마츠×오메가 카라마츠

*많이 우울하고 텁텁한 분위기

*모브 요소 많습니다.(토도모브, 모브카라, 카라모브, 기타 여러가지.)

* - <이 표시는 속내를 표현할 때, 강조할 때, 대사를 표현할 때에도 쓰입니다. 문맥에 따라 해석해주세요.

*합의하지 않은 성행위 묘사 있습니다. 그냥 이것저것 다 주의.

*퇴고 안해서 곧 수정합니다.

*외전 있을수도

 

 

 

 

 

                                       

     어디로도 달아나지 못하고 흩어질수도 없던 나의 바람.

 

 

                                        

 

 

 

 

 

                                       피안에서

 

 

 

 

 

 펼쳐진 머리칼의 잔상이 시야 언저리에 비쳐들었다. 간간히 새어나오는 여자의 신음이 적막함을 겨우 허문다. 전에도 몇번 접해본 그녀의 애교 있는 목소리는 침대에서도 귀엽다. 일으켜 안자 흐트러진 머리칼이 닿아왔다. 흥분한 숨으로 목덜미를 간지럽히며 그녀는 얼굴을 부볐다. 못 견디겠다는 듯 붙어오는 그녀의 머리칼이 자꾸만 시야를 가렸고, 문득 흘러나온 향은 지극히 대중적이고 평범한, 어렴풋이 향긋한 냄새였다. 예민하게 찾아보아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냄새의 무더기일 뿐.

 최고는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충분히 만족스럽고 황홀할 그녀가, 나는 왜인지 견딜 수 없어졌다. 오메가라던 그녀가 가진 무색무미한 체취와 방 안은 무언가를 덮거나 가리려는 향이 진동했다. 화면의 포르노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그녀를 도와 나는 의미 없는 절정에 올랐다.

 

 

 

 형에게는 향이 있었다. 달콤하거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곧바로 떠오르는 대중적인 부류와는 달랐다는 뜻이다. 형 외의 것에서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어 무엇으로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다. 다만 꽃이라기에는 조금 푸른 느낌이다. 희석하거나 두르듯 가볍게 묻은 향이 아닌 형이 근원인, 형에게서 나는. 그 때문에 가볍지 않았고 심지어 달콤하지도 않은 향이 오래도록 얼얼했다. 그래, 형의 향은 알싸했다. 맡을수록 진해지는 얼얼함이 결국은 나를 아프게 하지도 않고 익숙하게 만들어버리는게 숲속에서 들이마시는 오래된 향기 같기도 하고. 이렇게 말하니 정말 나무처럼 느껴진다. 뿌리를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삭막한 공간에 홀로 걸어다니는 나무. 새벽 내내 이슬이라도 모아둔걸까. 물기보다도 차가운 쌉싸름함이 내게 와 부딪혔다.

 어쩌면 그보다도 푸를 것이다. 보는 사람마저 시리게, 새파란 빛을 띈 바다가 그 뿌리 밑에서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묘한 푸른 빛은 시시때때로 굽이치는 파도와 달리 변하지 않는다. 물보라마저도 하얗게 부서지지 않고 파랗게 고이는 그 속에 몸을 던지면 분명 숨이 막힐거다.

 그리고 계속해서 상상했다. 물 속에서, 눈 앞이 흐려질 무렵 나는 흩어졌다. 나라기보다는, 나를 이루고 있던 수많은 성분과 의미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물에 녹아든 설탕처럼 많은 것을 바다에 버리고 일부는 바다와 하나가 된다. 마침내 무게조차 품지 않을 때 나는 바람이 된다. 하늘을 닮은 그곳에서 불기 시작한다.

 

 

 

 나는 자주 형의 등에 손을 대어보았다. 형의 등에 손을 올리면 손가락에는 향이 묻어났다. 그가 나를 부를 때까지의 시간. 그 잠깐이면 내 손에는 향이 묻었다. 향은 쉬이도 옮았고 코 밑에 손을 댄 채 나는 향기를 맡고는 했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오롯한 나만의 것. 손을 쥐었다 피거나 다른 곳에 문질러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물어본 적은 꽤 있었다. 형에게서 향이 나요. 박하향처럼 알싸하고 시원한 냄새가요. 박하랑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해요. 어린 내가 알고있는 것을 자세히 표현할수록 사람들의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내놓은 답은 이랬다. 특별히 친한 사이끼리는 종종 그들만 아는 서로의 것이 있다고들 하는데.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와 친하니까 그런게 아닐까? 특별한 단짝 사이인가 보네.

 

맞아. 향이 있든없든 카라마츠 형과 나는 제일 가까웠다. 그런데 특별한 지표까지. 우리가 서로의 짝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인정 받고 보여주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육둥이 중 쌍둥이. 기쁨을 참지 못하고 나는 나는듯이 카라마츠 형에게 달려가 형을 꼭 끌어안았다. 특별함으로 붙어있는 우리가 뿌듯하고 좋아서 견딜수가 없었다. 내게 닿은 형의 목덜미에서는 더 선명한 향이 났다. 한참을 그러다가 간신히 얼굴을 들었다. 형의 얼굴을 보고 방긋이 웃었다. 형, 우리 형. 내 반쪽.

 

-형한테는 박하 냄새 같은게 나서 좋아.

 

 나도 토도마츠가 좋아. 그 말에 가슴이 터질 듯 부풀었다. 형. 나한테는 향 같은 거 안 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대했다. 아직까지 내가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몰라보이는 형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말을 아끼기만 했다. 입을 몇번 오물거리다 곧 생각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형도 나의 것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토도마츠에게서는 형제들과 같이 쓰는 비누 냄새가 나.

 

그 말을 하고는 카라마츠 형도 나를 보며 방긋 웃어주었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이 되었을 때 갑작스러운 신체 검사가 있었다. 흔한 건강 진단인줄 알고 나는 일찍이 형들과 장난 치기에 바빴다. 예상대로 자질구레한 검사가 대부분이었고 몇가지 질문만을 제외하고는 특별할건 없었다.

 

-토도마츠군은 갑작스레 열이 오르거나 이상한 충동이 들은 적은 없어요?

-없어요.

 

형들이 이상한 소리를 할 때 때리고 싶다는 충동쯤?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하품을 하는 내 반응이 이미 아이들에게서 익숙한 것인 듯 검사 선생님은 태연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사람에게서 특이한 냄새 맡아본 적 있어요?

 

 당연히 '없다'고 대답해야 할텐데. 그 순간 나는 아주 익숙한 향이 생각났다. 내가 꽤나 관심이 있었던 냄새를. 이제는 손을 뻗지 않지만 때때로 향을 맡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시던 순간들을.

 

-..없어요.

 

 검사 끝났어요. 가도 좋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교실로 돌아갔다. 내가 형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향에 대해 알게 되는게 싫었을 뿐더러, 두번째는 뭔가 표준에서 떨어진 아이로 찍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약간씩 구겨졌지만 어렸던 나는 얼마 가지않아 검사 자체에 대해 말끔히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단 하루만에 검사 결과가 나누어졌다.

 

 향의 이유는 어릴 적 어른들의 말보다 훨씬 비현실적인데 반해 더욱 구체적이었다. 세상에는 절반의 절반보다도 아주 적은 사람들이 우리가 알고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특별하다는 그 사람들은 꽃과 벌처럼 상대방을 향으로 유혹하고, 그 향에 취한다고. 그런데 향을 풍기는게 완전히 의지대로 되는게 아니라 때때로 생리현상처럼 본인의지가 아닌 몸이 먼저 내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카라마츠 형의 냄새에 군침을 삼킨다는 뜻이고, 형의 향기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아주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향과 나 사이 특별함에 대한 내 기대는 향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꽃도 아닌 사람 주제에 향을 풍긴다는 이들. 그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에 대해 미친듯이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모르던 것들에 대해 더 자세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둘로 나눠졌다. 알파와 오메가. 오메가에게는 히트 사이클이라는 주기가 오면 향을 주체하지 못하고, 통제권을 몸에게 완전히 빼앗겨 그저 본능에 따르게 된다고 했다. -특히 성적으로. 달콤한 향으로 가린 발정기였다. 알파에게도 비슷한 주기가 있지만 오메가들보다 심하지 않고, 더 결정적으로 그들이 발정하는 이유는 오메가의 증폭적인 향이라고. 발정한 상태의 알파와 오메가는 이성을 잃고 중재가 없는 한 성관계를 가진다. 발정기의 그들이 정신을 차릴 때는 오로지 욕구가 해소된 상태일 뿐. 오메가는 관계 후 임신할 확률이 아주 높고, 이는 남성 오메가도 마찬가지다.

 

카라마츠 형은 오메가였다.

 

 

 

 

 어느 밤 잠든 줄 알았던 카라마츠 형이 내게 돌아누웠다. 하필이면 머리 속을 꽉 메운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생각 중이었다. 안 자? 형이 물어본다. 역시 형은 상냥하다.

 

-요즈음 기분 안 좋아보여.

-같이 말하는것도..많이 줄었고...

 

 이불 밑에서 형의 손이 닿아온다. 형이 조심스레 내 손을 잡는다. 조금 있으면 향이 옮겨올거다, 형은 오메가니까. 그 향은 상대방에게 조르는 뜻이다. 언젠가 형은 아기를 낳게 될까? 태어난 아이는 형을 뭐라고 부를까? 엄마?, 아빠? 나랑 형들은 뭐라고 부르지? 형, 지금 풍기는 향은 형의 의지야, 아니야?

 나는 형에게서 몸을 돌린다. 손은 뿌리쳤다. 놔, 잘거야. 화가 난 것처럼 입술을 다물었다. 형은 입술을 달싹거리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결국 내 눈치만을 본다. 우리는 잠들지도, 그렇다고 무엇을 하지도 않는다. 서로 모른 척하고만 있다. 서로 모른척하면서 서로를 보려고 애쓰고 있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두움이고 무서움이고, 눈 앞이 흐려 아무것도,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기어이 향이 묻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되는대로 물을 틀어 마구 흘려보낸다. 그 아래에 손을 밀어넣고 닥치는대로 비누를 문질렀다. 물이 손을 때리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잔뜩 엉겨붙은 거품이 사라지고서야 손을 꺼냈다. 조심스레 코 밑에 갖다대자 비누 냄새가 났다. 예전에 형이 내게서 난다고 했던 냄새. 그 사이사이에 형의 냄새까지 섞여들어 지독한 냄새가 되었다. 냄새가 코를 찔러 머리까지 파고들었고 나는 수도꼭지보다도 세차게 눈물을 흘려보낸다.

 

 

 

 

 

 알파와 오메가의 향은 서로를 위한 것일 뿐. 그들이 아닌 사람들은 당장 눈 앞에서 그들이 향을 뚝뚝 흘려도 무엇도 없는 공기의 냄새만 맡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분명 카라마츠 형의 향을 알고있다. 나는 내 거짓말이 생각났다. 내가 만약 검사 때 제대로 된 답을 했다면 나도 다른 결과를 받지 않았을까? 나도 알파이지 않을까?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내가 알고있는 형의 향과, 나의 거짓말을 고백하듯 말했다. 향이 어떤지, 향을 맡을 수 있음을 강조하려는 마냥 말만 바꾸어서 몇번이고 말했고 선생님은 차분하게 끝까지 나를 기다려주셨다.

 

-간혹 베타(알파,오메가가 아닌 일반인) 중에서 예민한 사람들은 알파와 오메가의 향을 맡을 수 있어요.

 

명확하고도 객관적인 말. 배 속이 당긴다. 나는 최대한 괜찮아 보이려 입을 앙다물었다.

 

-저는요, 제가 베타로 나온 이유가 제가 질문에 거짓말해서..거짓말 때문에....

-토도마츠군, 우리가 질문을 하는 이유는 알파와 오메가의 각성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어요. 형질 검사는 정확하고, 따라서 토도마츠군은 베타가 맞아요.

 

선생님이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신다. 역시나 기대는 사라져야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 내가 카라마츠 형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니, 내가 카라마츠 형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점이 뭐였지? 그게 없으면 나는 카라마츠 형을 덜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되는거야? 내가 카라마츠 형을 좋아해? 나는 왜 카라마츠 형의 향을 좋아하지? 나는 알파도 아닌데. 그래, 좋아하지 않으면 되는거야. 신경 쓸 필요 없는거야.

 

내가 카라마츠 형의 존재를 깨닫게 된 순간부터, 지독히 따라오던 그 향기는 잊으면 되는거야. 그것만 빼면 그대로인거야. 나도, 형도.

 

 

 

 

 

 

 요즈음 같은 때에 오메가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히트 사이클을 치르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억제제 한 알이면 향은 물론이고 면도하듯 본능을 깔끔하게 밀어버릴 수 있으니까. 게다가 약효가 24시간 정도 지속되니 하루 세번 식후에 먹는 감기약보다 편리할 것이다. 구매도 쉽다. 이토록 오메가가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사소한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카라마츠 형은 나와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어디에서나 함께하기로 나와 약속해놓고.

 졸업과 입학 사이, 카라마츠 형은 그 즈음 첫 히트 사이클을 치뤘다. 억제제 한 알이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히트 사이클. 카라마츠 형은 약이 잘 듣지 않았다. 형은 내내 엄마가 돌보고 있었고 며칠 동안 다른 방에서 혼자 잤다. 형을 간호하고 싶어도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다. 엄마는 우리가 형을 보지 못하게 했다.


 약이 맞지않는 체질이라나.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몸에 잘 맞도록 만들어진 약이라는데.


형은 일주일쯤 지나서야 병에 걸린 사람처럼 핼쑥한 얼굴로 우리와 아침을 먹었다. 몸은 괜찮냐는 물음에 형은 꺼진 뺨을 움직여 웃어보였다. 나는 형이 어쩔 수 없는 그 타고난 몸이 참 바보 같다고 느꼈다.

 엄마는 형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바빴다. 나는 불안해졌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까 엄마에게 몇번이고 형과 같은 학교를 가겠다 고집을 부렸었다.


-꼭 그렇게 해줄게. 엄마가 아빠랑 교장 선생님 설득해볼게.


 당연히 들어갈 수 있는게 아냐? 왜 설득이 전제된거야? 유독 오메가에게 불친절한 곳이 있다. 이해심이 고르지 못한 곳. 이해보다 오해로 뭉쳐진 그 곳은 형이 오메가라는 이유로 더 이상 언급조차 원치 않아했다. 형은 우리 집에서 꽤 먼 거리의 학교로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오소마츠 형은 쵸로마츠 형과 같은 학교를, 나는 이치마츠 형, 쥬시마츠 형과 같이 다니는데. 그래도 그 곳은 카라마츠 형이 주기 때마다 학교를 쉴 수 있게 해주었다. 아니, 오지 말라고 한건가.


 카라마츠 형은 가는 길 중간까지는 같은 방향인 오소마츠 형과 쵸로마츠 형, 둘과 함께 학교로 갔다. 어딘가 불편했어도 다들 적응하기 시작했다. 몇 달쯤 지났을 무렵 나는 카라마츠 형이 우리 학교에 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를 알게되었다. 사실 학교는 처음에는 관대한 척, 받아주려 고민은 했겠지만 곧 그만두었는데 알파인 아이가 입학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반을 갈라놓더라도 같은 학교에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크겠으며, 둘의 주기가 겹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쩔거냐는 선생의 목소리가 상상 속을 맴돈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 둘을 앞에서 붙어먹는 꼴부터 상상했으려나. 대단하다. 형을 흘레 붙는 짐승 따위로 취급하며 몇번이고 웃음을 터뜨렸겠지.

 공교롭게도 그 알파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그 소문은 입학식 전부터 퍼졌고, 아이들은 몇번이고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건네는 한마디란. -얘, 너가 그 알파니?


 알파 역시 구경거리였지만 오메가보다는 나은 취급이었다. 선망과 공포가 반반씩 뒤섞인 대상. 수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오메가를 찍어누르는 강간범보다는 알파는 활발하고 기운이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무엇보다 쉽게 꺼지지 않는 활기로 묘사되었다. 정말이지 남자답지 않냐는 여자아이들의 말소리와 웃음이 여기까지 들린다. 그도 그렇듯이 그 아이는 매체에서 보여주는 것과 똑같았으니까. 호감가는 외모에 쾌활하며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까지. 급기야 어감 좋은 녀석의 이름을 부를때면 청량감이 목으로 넘어가고 따라오는 그의 시선에, (우리야 알지 못하겠지만) 쿨워터한 알파향이 나지 않냐는 주장까지 생겨났다. 처음에는 녀석도 싫지않았겠지. 하지만 동물원 원숭이는 아니더라도 쇼윈도 마네킹처럼 보는 시선은 여지 없이 불쾌했을거다. 밝음조차도 아이들은 알파의 특성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점차 우리의 말에 녀석의 미소가 사라졌고 곧 우리끼리 키득거리며 말을 걸어도 녀석은 앞만을 노려보았다.


 나는 녀석이 알파라고 해서 대단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대단히 싫어하지도 않았다. 다만 형의 향을 알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녀석의 향은 조금도 맡을 수 없었다. 몇번 체육시간에 녀석의 뒤에서 향이라고 할만한 것을 샅샅이 찾았지만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땀내만 났을 뿐. 그게 다였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알고있는 카라마츠 형의 향도 '오메가 향'따위가 아니지 않았을까?

 1교시 시작 전, 산만하게 흩어진 아이들 사이에서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쯤 더 올린 키는 어딜 가도 눈에 띄었으니까. 매점이라도 갔다오는지 손에는 음료수 캔이 쥐어져있었다. 몇몇의 아이들과 등을 보인 채 걸어가고 있다. 저기, 내 부름에 녀석은 돌아본다. 하지만 그 상대가 나라는 것에는 놀란 듯 눈이 크게 뜨여있다. 그 짧은 순간에 이유 모를 긴장이 느껴져 입을 열었음에도 몇번이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할까, 그것도 몰랐다. 다만 나는 습관처럼 생긋, 웃었고.


-매점 가자. 사줄게.


 그리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인 녀석의 팔을 잡아 끌고갔다. 그렇겠지. 방금 갔다오는 길일텐데. 그래도 녀석은 순순히 끌려와주었다. 매점보다 한참 지나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갈 때까지. 산책로를 흉내내어 만든 조악한 공터는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특별한 마음이 없는 한 수업 직전부터 산책하러 쏘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테니까.

 -왜. 그제야 녀석은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부른거야? 딱히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을 것도 없어 보이는. 아직까지도 묘하게 긴장이 풀리지 않은 나 역시 쉽게 말하지 못했다. 대답 대신 들고있던 쇼핑 백을 열었다. 거기에 비닐로 싸매어 단단히 동봉된 무언가를 꺼내며.


-나한테 형이 있어. 아니, 물론 내 형은 다섯명이나 되지만, 그 중에서 좀 다른 형이 하나. 그 형은...좀 놀랍겠지만 오메가야.


 오메가. 그 말은 녀석도 좀 놀란 모양이었다. 본능이든 당혹감이든, 녀석의 널찍한 어깨가 한순간 움츠러졌다. 너도 많이 알지는 못하겠지. 나와 다를 바 없이.


-이상하게 난 어릴 적부터 형에게서 나는 다른 향을 맡을 수 있었어. 남들은 못 맡고 나만 맡을 수 있는 향. 너도 알겠지? 그런데 난 알파가 아니래. 검사 결과가 나왔지. 그냥 좀 예민하고 냄새 잘 맡는 베타라나. 각성 가능성 그런건 1%도 안되고. 그러려니 했는데, 너랑 같은 반이 된거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이상하게 네 냄새는 맡을 수 없었어. 그 때 이런 생각이 든거야. 어쩌면 내가 알고있던 형의 냄새도 다른 것일수도 있겠구나, 하고.


 의외로 녀석은 나의 사정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말 끝을 늘리고는 막아놓았던 것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것을 꺼내어 그에게 내미는 데까지 멈춤이 없었다. 반면 녀석은  뜯어진 순간부터 나와 달리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저기, 제발, 그러지마. 누가 흔들지도 않았는데 덜덜 떨리며 쏟아지고 흩어진 음성. 물론 난 듣지 않았다. 나는 왜 어른들이 알파와 오메가를 흘레붙는 짐승처럼 여겼는지, 그 본능이란게 어떤 형태인지 깨닫게 되었으니까. 왜 옛날, 사람들이 알파와 오메가를 강제로 붙여놨을 때 느낀 천박한 재미까지도.


-괜찮아. 그냥 눈 딱 감고 제대로 맡아보고서 어떤 향인지만 알려줘.


 나 한번만 도와줘. 너만 해 줄 수 있 는 일 이잖아. 내가 뱀이었다면 혀를 빼어 녀석을 한번에 삼켰을 거리로, 나는 녀석을 달래는 척 거리를 좁혔다. 어차피 그러라고 만들어진 몸이잖아, 라고 말할 뻔한 생각을 누르며. 있지, 지금 어떤 기분이야? 괴로운걸까, 기쁜걸까? 정신도 못 차릴 만큼.


 카라마츠 형은 전날 일주일 가까이 앓았던 사이클을 끝냈다. 형이 자리를 털면(비록 냄새를 못 맡더라도)엄마는 형이 쓴 모든 침구를 세탁하였다. 어제 세탁기를 돌리기 직전,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형이 쓴 베갯잎을 꺼내들었다. 무섭다기보다는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가슴이 수차례 뛰었다. 혹시라도 누가 알아차릴까, 향이 새어나갈까 공들여 숨겼다. 

 지금 풀어져나간 게 그것이었지만. 계속하여 집요하게 건넨 부탁(강요) 때문인지 물러설 데 없는 상황 탓인지 녀석은 감았던 눈을 떴다. 누군가의 폭력이라도 견디는 마냥 웅크리던 몸을 조금 풀어내었다. 불안한 눈초리가 끊임 없이 흔들리다가 결심한 듯 코를 틀어막은 손에 힘이 풀린다. -맞다, 우리 형 발정 심한데. 나는 이 말을 하려다 그저 생각으로 주워섬기고는 상냥하게 웃었다. 예상대로 녀석은 숨을 들이쉬기가 무섭게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는다. 절로 허리가 꼬인다는 듯이. 다시금 코를 막으려다 정신이 들어 손을 내린다. 영원 같은 시간과 두어 차례의 떨리는 숨소리, 그후 다시 손이 잽싸게 얼굴을 막는다.


참으로 고마운 수고로움으로, 녀석은 그 새 땀에 완전히 젖어있었다. 나는 꺼냈던 만큼이나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천을 집어넣고는 손을 털었다. 그때까지 녀석은 손으로 코를 틀어막은 채 발작적으로 호흡 중이었다. 누가 봐도 저러다 쓰러지거나 죽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그렇게 힘겹게 맛본 우리 형의 향은 어땠을까?


나는 속으로 수를 세어가며 몇초간을 기다리고는 어느 정도 지났다 느껴지기 무섭게 곧바로 말했다. 이제 괜찮아졌지? 어때, 어떤 느낌이야?

-모르겠어. 그냥, 얼얼해, 박하 같이, 아니, 아니야....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어. 맡을수록 어떤 향인지 더 알 수 없었어. 말을 마치고 녀석은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고개를 숙였다. 마냥 달콤하지 않고 오히려 맡는 사람을 얼얼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냄새. 나의 생각과 똑같았다. 나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형의 향은 '오메가'의 향이 맞았으며, 형을 알지 못하는 이들조차 형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 나는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언뜻 본 녀석의 호흡은 상기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녀석에게 몇마디 얼버무리고는 지나쳐 곧장 교실로 갔고 그 후 다시는 녀석과 말을 섞지도 아는 척하지도 않았다. 녀석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우연히 그 다음 해부터 반이 갈라져 다시 만날 일도 없었다.

 

 

 

 

 


 

 처음 겪게된 몽정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야한 꿈을 꾸고 있지도, 흥분감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았다. 우연찮게 잠에서 깨고보니 불쾌한 축축함이 맞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잘 자고 있었는데. 나는 남은 잠기운과 짜증에 반씩 취해 몸을 일으켰다. 형들이 알면 평생 놀림거리가 될 게 분명하니 다른 사람을 깨울수도 없었다.

 화장실로 가는 와중에도 별다른 생각도, 기분도 들지 않았다. 어서 대충 처리하고 들어가 자야지. 그게 다였다. 그러나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은, 다가올 무엇이든 간에 관심을 쏟을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때 누군가의 숨소리를 들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필사적으로 매달리듯이 헐떡거리던. 흩어졌던 신경이 모조리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기척을 살폈다. 욕실 건너편의 작은 방, 카라마츠 형이 히트 사이클을 보내던 곳. 그러고보니 하루 전부터 내 옆자리의 카라마츠 형이 사라졌었다. 무작위로, 그러나 카라마츠 형에 대한 생각들을 흘려보내며 문 앞에 서 있던 때, 다시 한번 소리가 났다.


-흐윽..아, 히잇!


고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사고였다. 짧게 튀어오르는 듯한 커진 숨소리에 심장이 공처럼 튀어올랐다. 귓가의 파문을 떠올리자 나는 어느 새 문을 밀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열린 틈새로 나는 눈을 가져간다. 아니, 던져넣기라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눈을 바짝 가까이 댄다. 그 안의 풍경은 지금까지도 기이할 정도로 생생해 내 상상대로 맞추어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그 기억에 집착했다.


늘 굳게 닫혀져 있던 작은 창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창틀 안으로는 조각품처럼 작은 달이 정교하게 들어차있었고, 그 빛은 방 안을 내리쬐었다. 태양처럼 환하지 못하더라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보일 정도로. 그 아래의 형은 휘어져 부러질 듯이 등을 잔뜩 젖히고 있었다. 끊임 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 손으로 자신의 몸을 쓰다듬고 어루어만진다. 잠옷 밑으로 들어간 손이 제 가슴의 돌기를 찌르고 문지른다. 반쯤 벗겨진 바지는 성기를 그대로 드러낸 채 반대쪽 손에 쥐어져있다. 모든 것은 막 뒤에서 진행되는 그림자 인형극처럼 어슴푸레한 빛과 어둠에 잠겨 움직였다. 형의 숨이 거칠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종이처럼 찢어질 것만 같다.


 미세한 손의 움직임까지 좇는다. 잘게 떨리는 손에는 아마 조바심이 담겨있다. 느끼고 있는 것보다도 더 강한 것을 느끼고픈 모양이었다. 어느 새 형의 성기는 잔뜩 서버린 채 벌써부터 방울진 액을 흘려댄다. 손톱을 세워가며 가슴을 짓누르던 것과 동시에 형은 파득, 몸을 떨었다.


-하읏!, 힉, 응, 아...!


잔뜩 힘을 주어 깨물던 입술이 열린다. 숨이 벅차 내지르던 소리조차 목 너머로 삼켜진다. 크게 벌어진 입 사이로 내민 혀 위로 말갛게 침이 고여있다. 왈칵거리며 흘리는 정액을 제외하고는 형은 벌 받는 것처럼 굳은 채 잘게 떨기만 한다. 사정과 동시에 휘어진 목, 두려운 듯이 감긴 눈, 잔뜩 끌어올려진 잠옷 사이로 홈처럼 패인 배꼽, 그 아래로는 빛의 장난처럼 미묘한 차이로 어둠에 젖어든 몸.


문 틈새가 넓지 않았기에 모든 것은 내 눈의 움직임에 차례차례 비추어졌다.


부들거리는 몸이 천천히 낮추어진다. 이불에 얼굴을 파묻듯이 옆으로 대고는 손가락을 굽혀진 다리 사이로 집어넣는다. 어느 새 바지는 한쪽 발목에만 걸쳐져 흰 허벅지가 언뜻 보였다. 배가 아픈 짐승처럼 형은 몸을 웅크렸지만 어둠 속에서도 때때로 몸을 들썩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욕실의 문이 꽤 큰 소리로 닫혔지만 형도, 나도 알지 못했다. 슬쩍 확인해본 내 몸은 이미 달라져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내려간 바지에 드러난 내 무릎은 지나친 흥분감에 자꾸만 떨렸다. 손 안의 자극보다도 머리 속의 상상 때문에 흥분이 극에 달았다. 온 몸이 불 붙은 것처럼 뜨겁다. 언젠가 형의 베갯잎을 훔쳤던 일이 생각난다. 더 이상 내게는 이유도, 쓸모도 없는 물건인데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그것에 코를 파묻었다. 익숙한 푸르름, 그리고 평소와 달리 가벼워지고 달콤하게 벌어지던 향. 사이클 중인 형의 방은 그 향으로 가득 차있었다. 애욕에 취한 형. 정액을 묻힌 채 떨리던 몸. 땀이 맺힐 때마다 진해지던 향과 분위기. 형, 카라마츠 형. 터진듯이 내 입은 필사적으로 형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잘도 흥분에 젖어갔다. 나는 희열과 함께 부서질 것 같았다. 부서지기 전에는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적 없었는데. 생각조차 품은 적 없었는데. 무의식 속에서 아주 가느다랗게 '최악'이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나는 손에 사정하였다. 나는 오물처럼 튄 내 정액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로 가던 내 앞에는, 형의 방 문 앞에 선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방문 앞에서 잠시 '내가 어제 문을 제대로 안 닫고 갔나?' 라고 중얼거리시다가 결국 깜빡한 모양이다, 라고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셨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던 나는 엄마와 다시 마주쳤다.


-토도마츠, 무슨 좋은 일 있니?


 어느 새 나는 웃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후로 이런 일은 몇번 더 반복되었다. 내 걸음은 새처럼 가벼워졌고 나는 방문을 완벽하게 닫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머리 속에서 형의 야한 모습도 반복되어가자 손에 묻은 것을 닦아낼 때 어느 새 죄책감도 쉽게 닦여져나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나는 꽤 노력했다.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나는 당장 욕정을 내비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얌전하게 굴었다. 끔찍한 일, 더러운 일, 그래서는 안되는 일. 기도처럼 수 없이 되뇌이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몇명의 여자아이들과 사귀게 되었다. 어렸을 때도 나는 여자아이들에게 상냥했고 사교성이 좋았기에 보다 더 모습이 성숙해지자 내게 관심을 표하는 아이들이 늘었다. 그 아이들과 난, 꽤 좋은 관계였다. 언제나 오래 가지 못했지만. 더 잘할 수가 없을만큼 최선을 다했음에도 끝은 늘 똑같았다.


-너 혹시 다른 사람 좋아하니?

-나한테 없는 것, 요구하는 분위기 만들지 마.


그들은 늘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이런 말로 헤어짐을 고했다.


 그럴리가 없잖아.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는건데?


어차피 큰 의미를 두고 만난 것도 아니었고, 분위기에 취해 고백하거나 받은 것이 전부여서 아쉬움이라는게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런 만남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일어났다. 형들 역시 변변한 스캔들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형제 입에서 직접 듣는 일은 드물었고 소문으로 접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 -오소마츠군, 옆 학교 여자애한테 고백이랑 성희롱을 동시에 했다가 뺨 싸다듬이질 당했대.



 딱 한번. 소문은 나지도 않았고 본인으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일이 있었다.



카라마츠 형. 형은 고등학교는 나와 같은 곳을 다닐 수 있었다. 몇년간 형은 수십가지가 넘는 억제제를 접한 다음에야 몸에 맞는 약을 간신히 찾았다. 단점은 구 억제제형이라 틈틈이 먹어야 했으며 부작용은 주기 불순이었다. 그런 식이었음에도, 형은 그 약을 찾은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제 사이클마다 누워 지낼 필요가 없어졌고, 그리고 다른 이유는-..


-억제제가 통하는 오메가라면, 학교 입학이 더 자유로우니까.

 어렸을 때 약속, 지금이라도 지켜주고 싶었어. 몇년 만에 보는 카라마츠 형만의 웃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짧게 대꾸했다. '안쓰럽다'며. 얼굴에 김이 솟는 느낌을 애써 억눌렀다.



 중학교 시절 몸 때문에 부활동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것을 보상 받겠다는 듯 카라마츠 형은 규모가 큰  연극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형은 그곳에서 사랑에 빠졌다. 대본을 쓰는 여자 선배에게. 그녀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고운 인상이었고, 얼굴보다도 마음이 훨씬 예쁘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실수가 많은 카라마츠 형이 야무진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일은 꽤 많았다. 형은 상냥한 그녀가 꽤 마음에 들었다. 둘 다 부지런한 성격 탓에 부실에 가장 먼저 오고는 했고 둘이 함께 있는 일이 잦아졌다. 단순한 고마움이 애정이 되고, 서로를 향한 애정이 되는 건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들 간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카라마츠 형을 엉뚱하면서도 재치 있다고 생각했다.


함께 부실을 사용하는 데 한 해를 보내고 두번째 해를 앞둔 어느 날. 그녀가 카라마츠 형에게 말했다.


-너를 위한 역할을 쓸거야.


 그녀는 마치 가벼운 농담이라는 듯 웃었다. 하지만 눈만은 진지했다. -왜? 너 솔직히 연기해보고 싶었잖아. 소품 팀 애들이 너를 네 솜씨 때문에 안 놔줘서 못 해본거지. 나 곧 졸업이라, 이게 내 학생 시절 마지막 작품인거 알지? 너를 위한 역할, 아니 너를 위한 이야기를 쓸거야, 카라마츠.


너를 내가 만든 무대 가운데 세우고 싶어.


 그녀는 첫 대본을 썼을 때보다도 노력과 열정을 담아 작품을 완성했다. 다만 무대에 큰 비중을 차지할 용기가 도무지 안 난다는 형을 위해 역할을 조연으로, 하지만 극에서 몹시 중요하며 반전으로 이끄는 인물로 설정했다. 형은 그녀를 위해 배역 오디션을 가뿐히 통과했다. 연습은 순조로웠고, 바로 며칠 뒤가 공연이었다. 형은 그녀와, 그녀가 만든 이야기와, 그녀의 무대에 서게 될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쭉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아.


-그녀는 날 좋아할까?


 나는 감정이 초과되는 것을 느꼈다. 카라마츠 형이 이렇게 단단하게 사랑에 빠지는 긴 시간 내내 나는 알지 못했다는 것과, 누가 들어도 행복한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조차 모르는 바보에 대해. 나는 다만 당장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대답을 했다.


-글쎄. 남자 오메가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까?


 그 말을 들은 카라마츠 형의 표정이 굳었다. 형은 허둥거리며 '무사히 공연한다면 그녀가 날 다르게 봐주지 않을까' 라고 얼버무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뜻하지 않았지만, 내 말이 마음에 무척 걸리는 모양이었다. 형은 그날부터 이미 준비가 된 대본을 처음부터 다시 외우기 시작했다. 혀가 닳아버릴 것처럼 외우고, 외웠다.


 마침내 축제 전 날, 형은 불안한 기색을 애써 숨기고는 피곤하다며 가장 먼저 들어갔다. 뒤늦게 들어간 형들과 나는 이 순간만큼은 카라마츠 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에 들었다. 아니, 사실 나는 형이 무사히 공연하기를 원치 않는다. 큰 실수라도 저질러 웃음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싶은 게 아니다. 그래, 좌절하는 모습이 보고싶은거다.


하지만, 왜? 어떤 부분에서?


 나는 쉽게 답을 구하지 못한 채 밀려오는 잠에 빠졌다. 잠은 발을 적시는 파도처럼 간지럽지만 상냥했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파란 바다로 나를 데려다놓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숙여 손 안에 물을 쥐어보았다. 물은 손 사이로 빠져나가면서도 손에 축축한 흔적을 남겼고, -그것은 짠내가 아닌 단내를 풍기고 있었다.




 잠에서 깼을 때 마치 꿀에 잠긴 기분이었다. 고이고 고인 단내가, 방 안에 뭉쳐져 있었다. 웬일인지 형들은 모두 일어나있었다. 모두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숙연한 분위기였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누군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카라마츠 형은? 어딨어?


-..그 녀석 지금 사이클이야.


오소마츠 형은 절망스러운 얼굴이었다. 꼭 지금 형의 상황이라는 것처럼.


 그 녀석, 공연 준비한다고 자기 몸 잊고 있었잖아. 그게 가장 중요한건데. 한 시간 전에 갑자기 그게 터져서는, 정신 놔버렸어. 나랑 쵸로마츠가 붙잡고 있다가 방금 엄마랑 아빠가 다른 방으로 옮겼고. 그런 상태로 공연 못해. 지금 시기 늦어버려서 약도 잘 안 들을거고, 들어도 몸은 못 움직여.

잊고있었다, 만일의 부작용을. 형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서, 그 약이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극은 형 없이 올라갔다. 그녀의 빠른 기지로 내용은 무리가지 않는 선에서 바뀌었고, 실수 없이 공연을 마쳤다고 한다. 관객들은 '역시 좋았다'는 반응이었지만, 어딘가 빠진 것처럼 아쉽고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형은 단순히 병결로 처리되었다. 몸이 나아지자 곧바로 찾아간 곳은 부실이었고, 그 곳에서 형은 깊숙히 허리부터 숙였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직접적으로 찾아가 사과했다. 죄송해요, 선배. 정말 죄송해요. 그 몇마디를 마칠 때 즈음에 형은 이미 울고있었고 그녀는 슬픈 미소만 지었다고 했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있는 부재의 이유였다.



 선배들의 졸업식이 있던 날. 형은 창 밖 어딘가로 시선을 던지다가 문득 내게 말했다. -토도마츠, 역시 오메가인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드물겠지? 그러고는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형은 누구의 졸업식도 찾아가 축하해주지 않았다. 고등학교의 졸업날은 유난히 고백이 많았다. 그것은 졸업까지도 함께하던 동급생 간에도, 남몰래 연정을 견뎌오다가 피워낸 선생과 제자였던 관계도, 생각보다 흔하지 않는 선후배 간에도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꽤 인기가 많았었던 전 연극부 대본 담당 선배는 추운 날씨에 손이 발갛게 변했음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던 사람이 되어 학교를 떠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받은거라 생각한 들고있던 꽃다발을 옛 부실에 남겨둔 채.


그 다음 해, 카라마츠 형은 연극부에서 나갔다.

 

 

 


 그 때부터 카라마츠 형의 약물 과다복용이 시작되었다. 꽤 풍족한 양의 억제제가 히트 사이클 한번에 동난 적이 많았고, 누군가 지켜보지 않으면 열개든 스무개든 한번에 삼키는 것이었다. 모두가 형을 말렸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차례 과다복용으로 인한 발작을 일으키고 나서야 차츰 양이 줄었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매일 약을 삼키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저 녀석, 저러다가는 언젠가 일 터뜨릴거야. 쵸로마츠 형의 말이었다.


 얼키고 설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기분이었다. 풀어내려다 오히려 한참 더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실의 매듭마다 사지가 한데 묶여버린 꼭두각시의 모양새로.


 

 


 

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형과 가장 가까운 관계인 사람은 여전히 나였다. 나 역시 여전히 변하지 못한 채였다. 애정과 욕정의 기이한 중점. 어린아이의 비정상적인 애착, 형에 대한 내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망가지는 것보다 움켜쥐는게 중요한. 나는 여성의 하얗고 작은 손을 좋아했지만 열에 들뜬 형의 목덜미를 내내 만져보고 싶었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것에 파고드는 내 행위는 더욱 대담해졌다. 일부러 내가 형에게 하는 말이 가벼워질수록 일말의 죄의식 역시 가벼워졌다. 여전히 반복되는 그 방에 도달하는 발걸음까지도.


 지금의 형은 정신을 놓지도, 발정하지도 않지만 나는 그 앞에서 미처 숨기지 못한 향의 발화를 느끼고는 했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사이클 중의 형의 모습은 여러가지. 견디지 못한 흥분감에 겨워 바르르 떨리던 몸, 스스로 치부를 건드리던 몸짓, 참지 못하고 실례하듯 이불을 적셨을 때 어쩔 줄 모르다가 수치심에 눈물을 흘리던, 쾌락보다 고통이 심할 때면 가느다랗게 엄마를 찾던 목소리.


어린 내가 엿보았던 형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문 사이로 다가설 용기는 없이 훔쳐보기만 하던. 한걸음만 더 내딛었어도 닿을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닿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애초에 어쩌려고? 무슨 짓을 저지를 생각인데?


 

 


 

 성인 남성, 그것도 한창이라는 나이대의 성욕 처리는 당연하다. 우리 집에는 여섯명의 20대 남자들이 있었고,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상대가 없어 우리들 대부분 자기 위로를 통해 풀어내고는 했으니 내 자위행위 역시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카라마츠 형은 잔뜩 당황하였다. 돌이켜보면 카라마츠 형은 오메가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이런 일에는 우리 형제들 중 묘하게 따돌림을 받고있었다. 카라마츠 형만을 제외하고, 우리는 서로의 취향부터 자위 습관까지 알고 있었으니까.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다락방으로 들어가 쌓인 욕구를 풀기 시작했다. 워낙 퀴퀴한 곳이긴 했지만, 그만큼 누구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으니까. 머리 속에서 무작위로 고른 필름처럼 카라마츠 형의 무수한 인상이 스쳐갔다. 형의 생각을 하며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건, 꽤 오랜만이었고 쉽게 진정될 수 없었다. 언제나의 향기를 떠올리는데 문득 현실의 코 앞에서 향이 스쳤다. 내리감은 눈이 열리자 카라마츠 형이 서있었다.

 

 

-아.


 굳이 고개를 돌려야할만큼 내 모습이 추하지는 않았고, 나는 재빨리 가려야 할 것은 가린 상태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이 긍정적이라 볼수는, 없었다. 쵸로마츠 형의 별명이 내게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물론 카라마츠 형이 그런 말을 하고다닐 사람은 아니지만. -오메가 앞에서 발정한 꼴이라니. 결코 유하지 못한 생각이 든다.

 형은 한발 늦게 정신을 차렸다. 해동된 물고기처럼 펄떡 튀고는 고개를 돌리며 아무 소리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 몰랐다며, 자기는 이만 가보겠다고 몸을 반쯤 튼 형은 어딘가 이상했다. 참은 것을 터뜨리는 것처럼 숨마다 거칠다. 말할 때마다 불필요하게 숨이 묻어나온다. 단순한 부끄러움이라기에는 이상해, 발정난 것처럼. 아, 밖에 나가서 알파 냄새라도 맡고 달아오른걸까? 맞아, 그래서 처리하려고 온거고? 그래, 형은 오메가니까. 그럴수도 있겠네. 아냐, 그런 것 같아. 생각은 곧 내 안에서 사실이 된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아침부터 카라마츠 형으로 시작된 내 기분은 좋지 못했고, 충동적이었다. 


-형, 왜 그래?


 

-아무것도..아니야.

 

 

-아니기는 무슨. 왜 이렇게 헐떡거리는데. 힘들거나..발정난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 쓰지..

 

 

-나랑 잘래, 형?


 


 급하게 상승세를 그리던 형의 입술 양끝이 미끄러진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것처럼 멍청한 얼굴. 나는 형의 팔을 잡는다. 물러나지 못하는 형의 귓가에 명확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하자고, 나랑. 섹스. 속삭이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지만 지나치게 분명한 발음. 형은 숨을 멈춘다. 나는 어릴 적처럼 형에게 환하게 웃어보인다. 피차 지금 급한거 같은데, 서로 돕는거잖아. 나는 어느 새 형의 목덜미를 간지럽히듯 쓰다듬는다. 상상했던 것보다 뜨거운 온도.

 형이 날 밀어낸다. 나여서 그러는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휘두르는 팔에는 멍청하리만큼 힘이 없다. 반면에 내 손아귀의 힘은 점점 더 붙는다. 단 한번도 형이라는 것을 잊은 적 없었는데 언제부터 죄책감이 들지 않았더라. 떨고 있는 모습이, 꼭 안아주고 싶다. 팔을 뿌리치지 못한 형은 뒷걸음 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 역시 형이 한걸음 멀어지는 만큼 다가선다. 결국 형은 발이라도 헛디뎠는지 그대로 뒤로 미끄러졌다. 나 역시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넘어지는 순간 바닥을 받친 내 손 위로 형의 머리가 세게 부딪힌다. 눈 앞에 드리워진 나를 형이 올려본다. 하지만 그 눈은 결코 행복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아보인다.


 

-여기서 하고싶었어?


 문 턱 위로 넘어지고, 엉켜있는 우리는 결코 순수해보이지 않는다. 무릎으로 무게를 실어 형의 몸을 짓누르자 형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낸다. 맞닿는 몸마다 뜨겁다. 형의 냄새가 올라온다. 귓가에 더운 숨을 흘리다가 혀로 귓바퀴를 핥았다. 형이 고개를 흔든다. 그거 저항이야? 왜 이렇게 발정했어, 다른 때도 그랬어? 아무도 안 볼 때마다 여기로 오고, 그런거야? 아쉽네, 나도 여기 종종 쓰고는 했는데 왜 이제까지 못 마주쳤지.

 질척하게 물린 귀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입 속에서 휘며 말랑거린다. 소리나게 빨아들이자 앓는 소리가 잠시 나왔다가 사라진다. 악문 이 사이로 숨이 바람 소리를 내며 드나든다. 나 역시 그 속을 탐 내 형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벌려진 입에 입을 맞대자 도망치듯 혀가 물러난다. 억지로 끌려와 들이닥치니 감은 눈꺼풀이 바르르 떨린다. 나, 사실 줄곧 이러고 싶었어. 입술을 떼자 붉어진 입술이 야하다. 그 입술이 급하게 숨을 삼킨다. 이상할 정도로 다급하고 필사적이게. 충분히 숨을 들이쉬었을텐데도 할딱거린다. 이상함을 느끼고 형의 몸을 일으키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색으로 따진다면 언제나 원색처럼 짙은 형의 향이 잘 익은 과일이 가지 끝에서 떨어질 것처럼 뻗어지는 감각. 코 속으로 삼키는 앙탈 같은 숨소리. 기운을 다 쓴 사람처럼 형은 늘어졌다. 어쩌면 저항의지, 그것이 고갈된 모양이었다. 누가 손대도 모를만큼 무방비했으니. 나는 이것을 모르지 않는다. 어릴 적 훔쳐봤던 모습들, 그리고 언젠가 쵸로마츠 형이 하던 걱정의 말.


부작용이었다.




 나는 형을 안아든다. 하지만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거나, 다른 방에서 편히 쉬게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형을 더 깊숙한 방 안으로 데려가며, 시계를 확인한다. 가족들이 언제쯤 집에 올지를 계산한다.



펼쳐진 이불 위로 형은 개켜두지 않은 천처럼 널부러져 있다. 나는 그의 바지부터 벗겨낸다. 종종 짧은 옷 아래로 보여지던 허벅지, 그리고 그보다는 보기 드물었던 안쪽의 하얀 살.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형이 바르작거리며 움직인다. 하지만 분명 제정신은 아니다. 추운 것인지 다리를 모으지만 꼭 의도한 것처럼 허벅지만 바싹 붙이고 종아리를 벌려낸 모양새가 된다. 형만의 푸른 후드티가 짧게나마 아래를 가려준다. 그것도 벗길까 고민하다가 잠시 내버려두는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잠든 것 같은 형의 두 다리를 잡아 벌린다. 그 사이에, 옷이 만든 그늘 속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 것. 나는 어릴 적처럼 눈부터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니라 입을 벌린다.

 과일을 베어물 것처럼 크게 입에 담자 형의 허리가 크게 움찔인다. 입에 힘을 주어 빨아들이니 비슷한 반응이 두세번 이어진다. 혀를 내어 요도 끝을 핥자 팔로 이불 위를 뭉갤듯이 비벼댄다. 그 반응이 꽤 재미있어 혀로 몇차례 장난 치듯이 움직이자 형은 사정했다. 입가에 묻은 정액을 닦아내려다 무심코 혀를 내어 맛을 봤다. 특별히 좋은 맛은 아니지만 입 안에서 단 맛이 퍼지는 기분이다. 자꾸만 움직이려는 다리가 거슬려 잡아누르고 있던 발목은 띠 모양으로 손자국이 붉게 번져있다.

 어느 새 다리는 활짝 벌려져 있었다. 그 창부 같은 모습에 나는 기분이 묘하게 나빠지면서도 재미를 느껴, 비웃는 듯한 웃음이 나왔다. 나는 형의 다리 사이에 몸을 잡는다. 몸을 접어버릴 것처럼 허벅지를 들어올리자 휘어지는 둔덕이 보인다. 크림만큼이나 새하얀 엉덩이는 한 입 깨물고 싶게 생겼다. 대신에 내 것을 문질렀다. 음식에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하고, 에피타이저 같네. 크림처럼 묻어나는게 있을 것 같다.

 마침내 더 이상 인내심이 없어졌을 때 나는 형이 가장 숨기고 싶어할 곳을 열었다. 누구도 들어온 적 없다는 것처럼 그것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하지만 억지로 잡아여는 힘에 뻐끔거리며 액을 주르륵 흘렸다. 몰랐지만 적시기 위한 어떤 행동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그곳은 지나치게 젖어있다. 구멍 위로 축축한 실선이 길게 생기는 것이 보인다. 그것이 가늘어지며 끊어진 것을 보고 나는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입 속처럼 그 안은 뜨겁게 축축하다. 손가락을 둥글게 움직이자 예민하게 안쪽이 움찔거리며 조여온다. 그 감각이 미치도록 낯설면서 생생해 나는 덩달아 뜨거워진 얼굴을 가렸다. 안쪽을 긁듯이 움직이자 틈을 없앨 것처럼 안쪽의 살이 모여들었다. 혀 없는 입이 일부러 빨아들이는 감각처럼 느껴졌다.

 손가락을 빼내자 애액이 하얗게 묻어났다. 바짝 타들어가는 목에 침 넘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벗겨진 옷은 이불 옆에 잘 접어두었다. 나는 천천히 끝을 맞추고는 내 것을 밀어넣었다. 부드러운 과육에 칼 끝을 밀어넣은 것과 같은 감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올가미로 목을 조이는 기분이었다. 치부를 의도적으로 놀리고 달래는 것처럼 그 곳은 부드럽게 벌어진다. 차마 끝까지 밀어넣지 못하고 있는데 불현듯 내 것이 한번에 삼켜졌다.


-하?! 잠깐, 만...


 정말 잇몸으로 물어뜯는게 아닐까. 연한 살에 짓이기듯 파묻힌 감각은 상상 이상이다. 부드럽지만 힘껏 틀어쥐어진 안은 마음대로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성기에 노골적으로 몰려든 압박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처음 형의 위로 몸을 겹친 때보다도 긴장이 몰려든다. 그제서야 내 미숙함을 깨닫고 나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진다.

 어떻게 해야하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적응을 기다리는데 흡, 하며 급하게 들이키는 숨소리가 들렸다. 허리가 들린 채 내 몸에 하반신을 바짝 붙인 모습이, 그 다음에는 울음을 삼키는 형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방금 그게 형이었구나.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형은 울음을 터뜨린다. 작은 가슴을 들썩거리며 아주 서럽다는 것처럼. 흐느끼는 소리의 반쯤은 발음이 다 뭉개져 잘 들리지도 않는다. 울음 탓에 조금 안쪽이 풀리는 것이 느껴지자 나는 자세를 고치며 형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댄다.


-왜 그래, 응? 뭐가 그렇게 속상해.


 다정한 목소리로 말 끝을 흐리고는 눈 앞의 얼굴 이곳저곳에 가볍게 입 맞춘다. 그것 마저도 다정하게.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작게 속삭이며 달랬다. 진짜 죄책감이라기보다는 그 서럽게 우는 얼굴이 귀여워 나오는 행동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조여지고 풀어지는 것이 달라져 자극이 되는 것이 조금은 미안하다. 진정된건지 울음이 잦아든 형의 숨이 고르게 변한다. 남은 울음마저 모두 삼키고 얌전해진 목울대가 야하다. 나는 천천히 드러난 하얀 목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에 부드럽게 목이 눌릴 때마다 형은 어리게 칭얼대었다. 그 모습에 구미가 당기는 건 정말 악취미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형은 코 속으로 삼켜져 흘러나오는 신음을 낸다. 어느 새 쇄골까지 내려온 나는 입을 열어 조심스레 깨물었다. 혀를 움직여 핥아보았다. 달다.

 어느 새 힘을 주어 깨물고 있었다. 힘껏 이에 힘을 주고 박아넣었다. 여과 없이 쏟아지는 신음이 듣기 좋다. 어느 새 형의 안은 잘 익은 과일처럼 부드럽고 물이 많다. 들어가고 따라나오고, 물고 늘어지고. 아주 미칠 것처럼 군다.

 날갯죽지 위로 걸쳐진 형의 손이 매끄러운 바닥 위를 미끄러지는 고양이처럼 절박하게 붙든다. 모아쥔 손 끝이 버티지 못하자 아무것도 없던 등 위에 하나둘씩 생채기를 남긴다. 손톱을 세워서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것을 아프다고 느끼기에는 나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고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내게 매달리는 형이 미치도록 좋았다.

 형은 온몸이 성감대인 것처럼 굴었다. 아직까지 입고있던 후드티 안으로 손을 밀어넣어 배를 지분대자 형은 혀라도 깨물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아직 무엇도 들어있지 않아 평평한 배를 아쉽다는 듯 마지막으로 두어번 쓰다듬고는 그대로 옷을 밀어올렸다. 유달리 색이 다른 점을 입에 담자 형이 고개를 잔뜩 꺾는다. 흐린 눈은 천장을 보며 울고있다.

 가슴이 온통 침으로 번들거릴 때까지 나는 집요하게 괴롭혔다. 잇자국이 남고 붉게 부은 유두가 단단히 서서 아픔의 여운 탓인지 몸이 흔들릴 때마다 움찔인다. 결국 쪽, 소리를 내며 나는 떨어졌고 형은 다시 사정해 형과 나의 몸은 백탁액이 튀었다. 지독한 쾌락에 덜덜 떨어대는 몸. 가만히 내려다보는 데 왜인지 격해지는 기분 탓에 그 몸을 단단하게 붙잡아 올렸다. 몸이 돌아가는 순간에도 박혀있던 성기에 쓸렸는지 형은 하악, 짧은 비명처럼 울었다. 턱에서 흐른 침이 이불 위로 점점이 떨어진다. 엎드린 등이 움찔거리는 것은 훨씬 눈에 띈다. 남자다우면서도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아래의 골반을 양 손으로 움켜쥔다. 천천히 제 것을 빼내고는 다시 끝까지 쳐박았다.

 팔과 다리는 쉽게 무너진다. 형 스스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기에 나는 점점 힘을 실어 붙들어야 했다. 제 기능을 잃어버린 뼈대들, 형은 뒤집어진 벌레처럼 힘 풀린 몸으로 허우적거렸다. 팔은 이미 스러졌으며 다리는 옆으로 벌어져갔다. 와중에 개폐를 반복하는 그곳만은 성실했다. 오직 나와 맞닿은 곳만이 버티고 있다.


 고통을 쾌락으로 혼동하는건지, 혹은 쾌락이 고통인건지. 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누군지, 내가 형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건지 무엇도 알지 못했고 다만 제게 가해지는 것을 느끼기에 바빴다. 오로지 그것만으로 머리가 꽉 채워져 있었다. 형이 한숨처럼 숨을 흘린다. 신음조차 낼 기운이 없는거라 판단하고는 힘을 실어 몸을 부딪히는데 문득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의아하게 여기며 잘못 들은거라 생각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낯선 열락에 뒤섞인 웃음이었다. 미칠 것 같은, 못 이길 정도의 쾌락의 끝에, 형은 뇌가 아주 녹아버린 모양이었다. 어느 새 커진 그 웃음은 살끼리 부딪히는 마찰음 사이로 녹아들어 기이하면서 이상한 음색을 자아냈다. 숨이 차는지 끅끅대거나 신음이 군데군데 휘저어져 발음은 불분명해 여운처럼 늘어지거나 신음처럼 끊어진 소리로 이어졌다. 그 모습은 백지나 창녀, 혹은 그 둘 모두로 보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아래의 이불은 타액으로 범벅이 되다 못해 짙은 얼룩으로 절어있었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 소리는 오히려 달짝지근했고 체기처럼 흥분이 몰려왔다. 첨단으로 안을 비비듯 눌러오자 형은 아아, 길게 소리내며 얼굴을 묻었다. 나도 모르게 눈 앞의 등에 타액을 몇 방울 떨어뜨리며 짐승처럼 움직였다. 일어나는 사정감에 머리 속이 터질 듯 어지럽다. 문득 형과 키스하고 싶어졌다. 형이 고개를 돌려 내게 입 맞추기를 원했지만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끅끅대기만 하는 형은 그럴 정신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붙잡아 돌릴까 생각했지만 결국 포기한다. 맞닿는 형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가속적으로 움직였다. 형, 카라마츠..향기가 지독했다. 어느 순간 후각이 마비되어 느끼지 못했던 향이 물처럼 쏟아진다. 눈 앞이 하얗게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사정했다. 그 때 형의 허리가 휘어지듯 들렸다.


-토도마츠..!


 쉬어버리고 힘 없는 목소리가 비명처럼 내 이름을 부른다. 벌어진 다리 새로 정액이 흘러내렸다. 밀어닥치는 쾌감에 생각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다만 나는, 듣는 그 순간에도 믿을수가 없었다. 형이, 내 이름을?

 마침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형의 안에 쏟아내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느끼며 나는 그대로 형 위로 쓰러졌다. 카라마츠 형은 진작에 그런 상태였다. 형을 감은 팔에는 힘을 풀지 않았다. 빈 틈 없이 형과 몸을 붙이고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여전히 진한 향기를 맡으며. 생각에 잠겼다. 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형은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내가 들은 건 환청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만약에 진짜였다면?

 나는 급히 카라마츠 형의 몸을 돌린다. 드디어 보게 된 형의 얼굴은 고요했다. 숯 많은 눈썹은 어떤 감정도 그리지 않았고 그저 눈을 감고 잠들어있었다. 내 이름의 흔적은 찾을수도 없이. 깨워내 물어보고 싶었다. 물론 정신을 차릴 것 같지도 않아 포기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상황을 수습했다.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곳'만. 빼주지 못해 형의 안에는 정액이 가득하겠지만 자꾸만 몸이 무거워졌다. 그나마 형의 몸을 닦아내고, 옷을 입혀두기까지는 했다. 씻어야하는데. 그조차도 견딜 수 없이 피곤하고 귀찮다. 그래서 나는 꾸역꾸역 옷을 껴입고는 형의 옆에 몸을 뉘였다. 원래 섹스란게 이렇게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인걸까. 아직까지도 머리 속이 복잡하고 가슴이 두근거림에도 몸과 정신은 수마에 휩쓸렸다. 그토록 거슬리던 것을 손에 넣고 내가 느낀 것은 방전이었다. 건전지가 닳아버린 장난감처럼 모든 게 굼뜨게 움직였다. 조심스레 형의 머리 밑으로 팔을 대준다. 남은 한 손으로는 그의 등 어딘가를 감싸거나 토닥일 생각이었지만 어쩐지 그러면 안된다는 마음이 한켠으로 든다.

 내려앉은 눈처럼 조용한 얼굴이, 숨을 쉴 때마다 작게 흔들리는 속눈썹이, 보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던 손이 그 얼굴의 코 밑에 묻어나는 숨에 닿는다. 미풍처럼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온도. 그러다 문득 허공을 거쳐 형과 나 사이의 공백에 자리했다. 이어지는 의식의 길이는 길지 못하다. 생각은 뜨겁고 심장은 과부하지만 모든 것이 느려진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향내는 달라져 있었다. 어린 싱싱함도, 만개함도 아닌 황혼에 다가가는 숙성의 빛이 만연하다. 나는 그 때 처음 그것을 깨달았다. 다시, 눈을 감는다. 다시 뜬다면 세상은 느려지다 못해 멈춰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나조차도. 그때까지 향기는 아직 남아있었다.



부패가 시작될 때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다. 그 순간이 가장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흔든다. 흔드는 손길보다도 왜인지 느껴지는 차가움에 나는 눈을 떴고 그 앞에는 카라마츠 형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기가 이질적이다. 잘못 들이마셨다가는 크게 위험할 것처럼.


 형은 받아들일 수 없는 탓에 오히려 무표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말을 꺼내는 데에는 몇번이고 숨을 마시고 멈추며 잘게 호흡했다. ...어떻게 된거야? 형이 들어올린 옷 밑으로, 온통 흩뿌려졌지만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은 자국들이 보였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몸이 많이 어지럽고 뜨거웠고, 눈을 뜨니 여기였어. 옷자락을 끌어내리는 손에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있어, 엉망으로 구겨졌다. 혹시..알고있는 게, 있니.


-그, 그게...


내 잘못이야. 나를 용서해주지 마. 나를 증오해도 좋고 이대로 등을 돌려도 나는 할 말이 없어.


-나는...잘못, 없어.



나는 내 생각 이상으로 악질적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뻣뻣해지면서도 나를 따라오는 시선에도 나는 말을 멈추지 못했다.


 매달렸잖아, 나한테. 눈도 못 뜨고 침까지 흘려가면서 나한테 안아달라고 목이 쉬도록 울었잖아. 내가 밀어내어도 달려들고 멋대로 저지른거잖아. 정말이지 역겹고, 싫었어. 제정신이야? 아니 발정난 오메가한테 제정신 운운하는 내가 이상한건가? 그렇지만 약을 그렇게까지 먹어대고는 발정한다는게 말이 돼? 발작이고 뭐고, 아주 불쾌해-..나는. 짐승도 아니고.


-토도마츠, 미안해.


숨이 막혀온다. 나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형은 말했다. 말한다기보다는 쥐어짜내는 것처럼.


-없었던 일로 하자.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서.


형의 고개가 떨어진다. 그것은 진심으로 형이 용서와 사죄를 바라는 행동이었고 내게는 어떠한 비는 행위보다도 크게 부딪혔다. 나는 순간 아주 무서워졌다. 내가 무슨 생각이었지. 왜 그렇게까지 말한거지. 어떤 얼굴로 말했더라.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입 속에서 형의 이름이, 그러나 무엇인가에 걸렸는지 더듬거리며 나왔다. 카, 카라마츠 형... 형의 고개가 조금쯤 들려졌다. 이제는 형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할 차례였다.


그렇게 해줘.


 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그것 뿐이었다. 그리고 달아났다. 내게 어떤 분노도, 책망도 없었고 그것이 끝이었다. 여전히 울지 않은 채로. 그렇게 울음을 잘 참는 형의 얼굴을, 나는 살면서 처음 보았다.



나는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자리를 비웠던 가족들도 하나 둘 돌아왔지만 형은 오지 않았다. 아직. 피곤해질대로 되어 우리가 곯아떨어질 무렵에도 형은 없었다. 아직. 나는 손톱 밑의 살을 뜯어내며 기다렸다. 믿기지 않겠지만 잠을 자기 위해 저지른 행동이었다.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온몸의 신경이 머리로 들러붙어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루 정도야. 그래,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나는 바로 옆의 빈 자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러자 너덜거리는 살점이 눌러붙은 손가락이 따끔거렸다.

 

 

 

 

 

 

 하지만 나는 형을 볼 수 없었다. 형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생각지 못한 소식이 다가왔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형은 치료를 받으러 떠났다. 단순한 약물이나 수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몸의 궤도가 새로 갖춰져야 할 사람들은 아예 치료 기관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 거식증, 대인 기피증, 알코올 중독증..등. 물론 이들은 죄수가 아니지만 치료라는 명목 하에 가둬진 채 모든 습관들이 뜯어내지기 마련이다. -어머, 밤에 늦게 주무시고 당류를 많이 드시니까 살이 찌시죠. 그렇게 방 안에만 있으면 밖에 나갈 때마다 낯설기 마련이에요. -이런 식으로. 그렇게 낱낱이 해부 당하고 각각의 처방을 모조리 받으면 어떤 병이라도 고쳐지지 않는게 신기하지 않을까. 어찌 되었던, 사이클 각성의 정도가 유달리 심한 오메가와 알파를 치료하는 기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것이 병이나 장애로 간주되는지는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카라마츠 형은 그 곳으로 갔다. 수감기간은, 대략 증세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로. 사회적 배려 대상인 알파와 오메가를 위해 비용도 비싸지 않았고 생각보다 치료 성과는 빠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형은 그 곳에서 함께 '입원한' 알파와 오메가들과 잡담도 나누며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있을 터였다.


 연락이 오갔지만 형은 가족들이 원하는 만큼 자주,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전화마저 거부하더니 종내에는 네모반듯한 편지만이 소식을 전했다. 그마저도 다정한 말투가 아니었다면 보고서나 다름 없는 간결함이었다.

 몇번이고 만남은 취소되었다. 차라리 죄수가 마주하기 쉬울 것이다. 가족들은 변화를 불편해 했다. 하지만 적응해가고 있었다. 처음 카라마츠 형이 오메가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처럼.


 결벽적으로 하얀 편지는 나이순으로 읽어졌다. 종종 누군가 큰 소리로 읽어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족들은 형의 편지를 손수 접하고싶어했다. 마지막 순서는 언제나 나. 편지를 넘겨받을 때면, 늘 물었다. 잘 지낸대? 그러면 형들의 얼굴이 웃는 것도 아닌 무표정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응. 그렇다면 읽을 가치가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편지를 건네받았다. 치료의 차도와 근래의 기분, 주변 환경따위가 정갈하게 적힌 글. 각각의 글자를 모두 읽고나면 나는 편지를 서랍에 넣었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갑자기 사라졌던 것처럼 형은 갑자기 돌아왔다. 1년만이었다. 눈물을 쏟아내는 가족들에게 형은 머뭇거리다 미안하다 말하며 꼭 안아주기를 반복했다. 울음이 잦아들었을 무렵 형은 조금 떨어진 채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은 채 형을 바라보던 나를 보았다.


-많이 야위었네.


 다가온 손 끝이 뺨 언저리를 스치고 다시 멀어졌다. 형은 다시 그 손으로 제게 매달리는 사람들을 도닥거렸다. 코 끝이 간지럽다. 작게 들이마신 공기에는 이상하게도 마지막 기억과는 한참 다른 싱싱하고도 미미한, 새로운 향기가 맴돌고 있었다.


눈물의 다음은 축제였다.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한 상과 싱거운 말에도 울고 웃는 가족들. 질문은 쏟아졌고 형은 그 모든 소홀함을 갚으려는 것처럼 자세히 답해주었다.

 

-센터에 들어가게 된 건 치비타의 도움 덕분이었다. 괴롭힌 사람? 없었어. 아, 식사는 맛있었다.

 

이윽고, 누군가 물었다. -이제 히트 사이클로는 고생하지 않는거야?

 

형은 잠시 조용해졌다. 가족들의 시선이 모여들었고 머뭇거림 끝에 형의 대답은 이랬다. 치료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모두 끝났고 이제 다시는 고생할 일도 없을거라고.

 

왜냐하면 각인이 이루어졌으니까.

 

 

 

 

 그 남자는 같은 치료 센터에 다니던 남성 알파였고 '사고' 이후 곧바로 오게된 카라마츠 형이 마음을 닫았음에도 다시금 열릴 것을 꼭 알았던 것처럼 굴었다. 끊임 없는 다정한 인사를 무시하기에는 카라마츠 형은 너무나 착한 사람이어서,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억지로 대답을 했을 때 그는 환하게 웃었다고. 그 얼굴이 얼마나 터무니 없이 깨끗하고 행복한지 형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고 했다. 작은 활동따위도 남자와 함께 하게되는 사건이 많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어딜 가든 함께하게 되었다고 한다. 꼭 고등학교 때 친구들끼리 그러는 것처럼. 형의 뼈 아픈 농에도 남자는 곧잘 어울려주었다. 처음부터 호감이라기에는 단순한 친분이었지만, 어쨌든 형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형의 치료가 끝났을 즈음 남자는 가벼운 통원 치료 중이라 함께 축하하고자 남자의 집으로 갔다.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려는 즈음- 거짓말처럼 형의 히트 사이클이 터졌고..

 

..그렇게 됐다. 서로 의사도 확인했고, 후회는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안이 시끄러웠다. 혼자서 감히 '졸업'을? 진짜 의사 맞은거 확실해? 세크로스! 리얼충 재수 없다, 죽어라. 무례했지만 그게 우리식의 축하이며 걱정이었다.

 

-좋은 사람이고..안정적인 수입도 있고..곧 얼굴 보여드릴테니까, 그..멋대로 결정한 일이라 죄송합니다.

 

온통 붉은 얼굴이 부모님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정중히 부탁했다. -계속, 함께하기로 약속해서..거창한 식 같은건 필요 없으니 함께 살고싶어요. 아니, 그러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번에는 누구도 시끄럽게 굴지 않았다. 똑같은 색으로 물들은 얼굴들은 조용히 함께 답을 기다렸고 부모님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형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수화기는 물론 전화선까지 꼭 쥔 손은 달콤한 긴장 상태에 젖어있었다. 누군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그보다도 작은 목소리는 오직 수화기에 귓가를 댄 카라마츠 형에게만 닿았다. 무엇을 대화하는지 말의 마디마다 표정이 달라졌지만 대체로 행복해보였다.

 

-아무리 합의라지만, 히트 사이클 온 오메가한테 손 대는 건 '강간' 아니야?

 

 무슨 판단력이 있겠어. 수화기를 내려놓던 형의 뒷모습이 한순간 움츠러들었다. 형의 고개가 비스듬히 내게 돌려졌다. 어디, 늘 하던대로 울고불며 변명해보지 그래?

 

-아니야.

 

 하지만 형은 덤덤하고도 단호한 반응이었다. 천천히, 두어번 고개를 젓고는 형은 다시 말했다.

 

-아니야, 토도마츠.

 

내가 그러자고 했으니까. 형은 시선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늘 서로의 억제제를 가지고 다녔어. 일이 잘못되면 네 말대로 제정신 아닌 본인보다 도움이 될테니까. 우리 둘다 인내심이 길러졌고, 상대의 흥분감에 휘둘리는 일도 없었어. 오히려 냉정하게 알약을 물려주었다. 그 날 밤은 말이야..그가 내게 물어봤어. 억제제를 먹겠냐고. 그리고 자신은 다른 방에 가있거나 원한다면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원치 않는다고 대답했고, 그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향을 열었지. 모두 내 선택이었다. 내가 아니라, 그가 받아준거야.

 

 

-토도마츠, 죄책감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잊었으니까. 그건 너를 위해서였기도 한데, 뭐가 문제지?

 

 

 

 

 돌아왔음에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시간은 남아있었지만. 오소마츠 형은 여전했지만 바로 밑의 동생이 떠난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쵸로마츠 형은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가며 챙겨줬고 쥬시마츠 형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이치마츠 형마저도 오랜만에 가시를 뺀 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그리고, 나는...

 

 

카라마츠 형은 바빴다. 사는 곳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에는 준비할 것이 많았다. 많은 것을 장만해야했고, 버려야했다. 센스 있는 나라면 그러는 것에 도움을 줄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 남자와 연락할 일도 잦았다. 굳이 필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형은 그 남자와 연락했고 주기적으로 만났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그를 가족에게 보여주기로 되어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약속에 나갔다. 얼굴을 잊어버리는 줄 알았다며 왜 이리 오랜만이냐고 친구들은 장난스레 구박했다. 이번에는 내 마음에 들 사람이 많다고 농담까지 곁들이며. 나는 적당한 미소로 내 마음을 흐렸다. 거짓은 아니었는지 얼핏 보아도 예쁘장한 여성들이 많았다. 분위기는 쉽게 무르익었고 사람들은 상냥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들어오지 않았다.

 여럿의 소개를 지나쳤다. 그냥 이대로 돌아갈까 생각하던 중. 체구가 작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오메가'.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런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해도 돼?

-잘못된게 아니잖아. 그리고 나는 앞으로 불편할 일이 없도록 차라리 첫만남에 털어놓고 싶어.

 

 여기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말이야. 그녀의 볼이 사랑스럽게 붉어졌다.

 

그녀는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고 말하자면 쉬운 쪽이었다. 흥미 없이 던지는 나의 말에 몇번이고 대답을 잇더니 취기가 오르자 내게 집까지 바래다 달라고 부탁했다. 가는 길 내내,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향을 숨기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차가워진 밤 공기가 익숙해진 손으로 그녀를 만지자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옷 속에까지 들어온 손을 밀쳐내지는 않았다. 허물처럼 옷은 쉽게 벗겨졌다. 내가 그녀의 옷을 벗기기도 했고, 그녀가 내 옷을 벗기기도 했다. 그녀의 몸은 장난스럽고 부드러웠다. -저, 사실 토도마츠씨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는 머리카락이 달라붙었을 뿐 그 외에 따라오는 것은 없었다. 사실 나는 그녀의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는 쉽게 절정에 올랐다. 하지만 뜨거운 숨이 완전히 사그러들 때까지 그 곳에서는 무언가 타들어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왜인지 아주 녹이 슨 기억이 떠올랐다. 켜켜이 쌓였던 삭은 감정이 속에서 넘실거렸다. 사랑이라기에는 너무 삐뚤어졌고, 욕정이라기에는 그를 너무 앓았던. 

 문득 나는 향기가 떠올랐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눈부시다가도 제 풀에 사라지고 마는,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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